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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 #둥지
    카테고리 없음 2021. 3. 4. 18:05

    이 조그만 둥지에 어떤 새가 살았을까,
    몸집이 아주 작은 벌새인가? 이 작은 둥지에서 알을 까고 벌레를 잡아 새끼를 먹이고 길러 멀리 보냈겠지. 그리고 어미도 떠나고 빈 둥지만 이대로 남았다.
    어릴 때 뛰어놀던 고향에도 빈 둥지가 많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60 여 년 전 떠난 사촌 언니가 살던 집이 눈에 들어온다.

    언니네 식구가 서울로 떠나고 누군가 살았었지만 지금은 비었다. 간식으로 즐겨 먹던 마당의 단감나무는 속이 썩어 삭았고 새 가지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직도 감이 열리는지 모르겠다. 감꽃이 피면 살펴봐야겠다.

    국민학교 다닐 때 언니한테 화투를 배운 일이 머리를 스친다. 골방엔 박화향이 가득했다. 아마 특용 작물로 심었다가 판로가 막혀 보관해 두었던 것 같다. 화투놀이가 나쁜 건 줄은 알아 어른들 몰래 배운다고 골방에 박혀 배웠다. 배울 땐 재미 있었는데 그 뒤로 써 먹지는 않았다. 아마 취미가 없었나보다.
    이제 언니도 칠순이 되었고 외동딸 애지중지 기르시던 어미새도 오래전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우물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면 또 하나의 둥지가 쓸쓸함을 더한다.

    6남매를 길러 멀리 보낸 할머니는 오랫동안 혼자 사셨다. 군대까지 다녀온 큰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넋이 나간 듯 했다. 막내마저 교통사고로 가슴에 묻었을 때 죽지 못해 살았으리라. 남은 새끼들이 있었기에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삶을 지탱하시다 떠난 지 10여 년 되었다.
    우리 집, 뒤에도 빈 둥지가 있다.

    50여 년 전, 부산에서 여고를 졸업한 인텔리 아가씨가 시골이 좋아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이다. 낮에는 부지런히 일한 동네 아가씨들이 저녁에 다 모였다. 세상 돌아가는 재미나는 이야기에 밤새는 줄 모르고 하하 호호 깔깔거렸다. 그 시절에는 리디오도 귀한 때라 해박한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밤마다 동네 처녀들이 모여들었다. 언니가 마산으로 시집을 간 후 부모님 돌아가시고 집은 그대로다. 대나무가 집 둘레를 감싸고 있다. 집을 둘러싼 대나무 잎이 흔들릴 때마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다.
    엄마가 살다 가신 우리 집도 빈 둥지였다. 한 번씩 와보고 싶고, 비가 새어 이태 전에 단장을 했다.

    살릴 수 있는 것은 그대로 두고 황토방을 추가했다. 생각만큼 자주 오는 것이 쉽지 않다. 이제 내 나이가 살아갈 날이 지금까지 산 날의 6분의 1쯤 남았다. 그것도 몸 관리를 아주 잘 했을 경우에. 지난 여름 장마 후에 왔더니 벽은 곰팡이가 자리를 잡고 떡 버티고 있었다. 자주 오지 않았다고 시위라도 하는 양 온 벽을 새까맣게 칠했다. 마당의 풀들은 올 때마다 뽑아보지만 '나 여기 있소'하고 숨바꼭질을 한다. 그나마 채송화가 반긴다. 담 밑의 봉숭아도 키 자랑을 하면서 얼굴을 붉히고 있다. 채송화 봉선화가 심심할까봐 수돗가에 앵두나무 한 그루 심었다. 꽃향기가 집안 가득 퍼지기를 기원하면서 금목서도 한 그루 보탰다. 새로운 둥지가 다듬어지니까 멀리 떠났던 형제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얼굴 보기로 했다. 모임 날은 추석 지난 2주째 토요일이다. 시간 여유 있으면 일찍 왔다가 늦게 가도 된다. 이제 조금씩 쉬어가도 된다. 아니 쉬면서 가야 한다. 그 동안 열심히 살아온 형제 자매, 친구들 모두 쉬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끼는 자라 멀리 떠나고 빈 둥지만 남은 시골이지만, 오고 싶고 오면 더 머물고 싶은 이 곳, 누구든지 빈 둥지 채우면서 건강한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길 기대한다.

    비 오는 날
    싹실 황토방 구들목에
    배를 깔고서.

    달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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