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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유과 #뽁뽁
    카테고리 없음 2021. 2. 5. 15:05

    설날이 다가오니 '유과'가 생각난다.
    찹쌀가루 400g에 생 콩가루 한 숟갈을 넣고 소주로 반죽했다. 면 보자기에 넣고 찜통에 쪘다. 찐 찹쌀가루를 방망이로 밀어 칼로 잘라 뜨거운 곳에 두고 말렸다.

    '유과'하면 엄마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 집, 설, 추석 명절 분위기는 강정, 유과 만들기로 시작됐다. 고종사촌 언니가 시집갈 때도 엄마 몸피보다 더 큰 광주리를 이고 가셨다. 광주리 속에는 눈송이처럼 뽀얀 유과와 초록, 빨강, 노랑으로 꽃무늬 수놓은 강정이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엄마와 함께 유과를 만들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찹쌀가루를 면보자기에 넣고 시루에 안쳐 푹 쪘다. 찐 가루에 물에 푹 불린 생 콩 한 숟갈을 넣고 뒤집은 솥 뚜껑 위에 올리고 방망이로 쳐댔다. 언제까지?

    떡이 부풀어 올라 공기방울이 '뽁뽁'소리를 내며 터질 때까지. 팔이 아파 못하겠다 싶을 때쯤 여기저기서 뽁뽁 소리가 터졌다. 반가운 소리였다. 공기구멍은 많이 생길수록 좋다. 입안에서 부드럽고 바싹하게 살살 녹는 유과가 되기 때문에. 얇게 저민 떡은 적당한 크기로 잘라 뜨거운 방바닥에서 뒤집어가면서 2~3일 말렸다. 물기가 사라지고 적당하게 마르면 튀겼다. 1960년 대는 식용유가 귀해 모래를 뜨겁게 달구어 마른 떡을 부풀어 오르게 했다. 떡을 모래 속에 묻으면 하얀 얼굴이 여기저기서 쏙쏙 올라왔다. 저녁에는 밝은 촛불을 켜고 떡에 박힌 모래를 바늘로 한 알 한 알 파냈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떡에 솔가지로 엿을 바르고 반쯤 가루를 낸 박상 옷을 입혔다. 엿이 알맞게 고여야 옷 입히기가 수월했다. 엿은 숟가락으로 떠서 약간 흐를 정도로 고우면 되고 굳으면 딱딱해짐으로 화롯불에 올려 놓고 발랐다. 바른 엿 위에 쌀로 튀긴, 반쯤 가루 낸 밥상을 흩뿌리면 곱고 부드러운 눈송이 같은 유과가 완성됐다.
    유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엄마의 고된 삶처럼 여겨진다. 쌀이 가루가 되어야 떡을 만들 수 있듯이 가녀린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에 매달렸다. 몸으로 일을 해야만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까막눈을 면하게 할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뜨거운 김으로 익힌 가루가 잘 뭉쳐지듯 고된 일 내색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힘든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방망이로 많이 맞아야 공기 방울이 생겨 유과의 풍미를 느끼게 하듯 온갖 궂은일은 몸으로 막으면서 속으로 삭혔으리라. 그러고도 모래 속에 파묻혀 부풀기를 기다린 것처럼 6남매가 자라면 좋은 날이 오리라 기대하셨겠지. 달콤한 꿀이 온몸을 덥혀 올 때, 새로운 곱고 깨끗한 옷으로 온몸을 감싸 주었을 때. .
    엄마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까?
    세월이 흐르고 흘러, 모두들 엄마의 둥지를 떠나고, 유과에서 떨어진 밥상 한 톨처럼 , 남겨진 엄마. 한길에 나와 앉아 쭉 뻗은 찻길을 바라본다. 엄마 품을 떠난 새들은 모두 튼튼한 제 둥지를 잘 만들어 가고 있건만, 필요 없는 생각으로 햇볕을 쪼이며 세월을 낚고 있다. 쌩쌩 달려오는 저 차에 우리 집 식구가 오나? 기대감으로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던 엄마의 모습, 자꾸만 아른거린다.

    내가 만든 유과는 여기까지다. 잘 마른 떡을 식용유에 튀기기만 했다. 엿을 바를만큼 작품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담백하고 고소했다.
    엄마! 유과!
    보고 싶고 그립고 푹 파묻혀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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